인간 정신의 진화에 관한 전문가이자 명 강의자로서 널리 알려진 그는 1952년부터 정신요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정신치료협회의 종신회원으로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다수의 과학 논문과 강연 테이프를 발표했으며, 1973년 <음식을 통한 정신치료>를 노벨상 수상자인 리누스 폴링과 공동 저작하여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여 년에 걸친 연구와 수천명의 대상으로 한 실험의 열매인 이 책은, “표면의식에서는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도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에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음”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그 동안 잠자고 있었던 내면의 신성(神性)이 활성화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해 준다.
(55p) 운동역학 (kinesiology)
두 사람이 필요하다. 한 사람은 피험자로서, 한 팔을 바닥과 수평으로 유지하며 옆으로 올린다. 시험자는 두 손가락으로 올려진 팔의 손목을 누르며 ‘저항하라’고 말한다. 피험자는 팔이 아래로 내려가는 압력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한다. 이것이 시험의 전부이다.
(59p) 본서에서의 시험 방법
우리가 연구에 도입한 방법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적인 강도를 로그 스케일(logarithmic scale)로 측정했다는 점이다. 피험자들에게 나타난 수치는 단지 육체의 존재 상태일 뿐인 1에서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의식의 정점이라 할 600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서는 깨달음의 상태인 1,000까지 분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살아 있기만 한 상태가 1이라면 사랑의 힘은 200 이상인가?”(피험자가 강해지면 긍정을 뜻함), “사랑은 300 이상인가?”(피험자가 여전히 강한 반응을 보임) 등으로 근육 반응이 약해질 때까지 질문을 계속한다. 우리의 경우 사랑은 500으로 측정되었고, 이 수치는 수많은 피험자들에게 거듭 시험해도 늘 마찬가지였다.
(12p) 그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피험자가 시험 내용이나 문제를 의식적으로 꼭 알 필요는 없었다. 시험자나 피험자, 그리고 다수의 관객들이 봉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반응은 지적인 내용의 시험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49p) 우리의 연구는 노벨상 수상자인 존 에클리스 경이 도달한 결론과도 일치한다. 에클리스 경은 뇌는 마음 속에 존재하는 일련의 에너지 패턴을 받아들이는 수신기에 지나지 않고, 이 에너지 패턴은 의식이 생각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처럼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62p)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의식의 지도’에서 측정된 수치는 감정이나 인식, 태도, 세계관, 영적 믿음 등을 통해 나타나는 특정한 의식 세계와 서로 상응한다.
의식 세계를 수치화하는 데 있어서 ‘용기’의 수준인 200이 일종의 분기점이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이 200이라는 수치야말로 끌개가 강하냐 약하냐, 영향력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분기점인 것이다.
| 신의 관점 | 세속의 관점 | 수준 | 수치 | 감정 | 과정 |
| 자아 | 존재 | 깨달음 | 700 ~1000 | 언어 이전 | 순수 의식 |
| 항상 존재하는 | 완전한 | 평화 | 600 | 축복 | 자각 |
| 하나 | 전부 갖춘 | 기쁨 | 540 | 고요함 | 거룩함 |
| 사랑 | 자비로운 | 사랑 | 500 | 존경 | 계시 |
| 현명함 | 의미 있는 | 이성 | 400 | 이해 | 추상 |
| 인정 많은 | 화목한 | 포용 | 350 | 용서 | 초월 |
| 감화 주는 | 희망에 찬 | 자발성 | 310 | 낙관 | 의향 |
| 능력이 있는 | 만족한 | 중용 | 250 | 신뢰 | 해방 |
| 용납하는 | 가능한 | 용기 | 200 | 긍정 | 힘을 주는 |
| 무관심한 | 요구가 많은 | 자존심 | 175 | 경멸 | 과장 |
| 복수에 찬 | 적대의 | 분노 | 150 | 미움 | 공격 |
| 부정하는 | 실망하는 | 욕망 | 125 | 갈망 | 구속 |
| 징벌의 | 무서운 | 두려움 | 100 | 근심 | 물러남 |
| 경멸의 | 비극의 | 슬픔 | 75 | 후회 | 낙담 |
| 비난하는 | 절망의 | 무기력 | 50 | 절망 | 포기 |
| 원한을 품음 | 사악한 | 죄의식 | 30 | 비난 | 파괴 |
| 멸시하는 | 비참한 | 수치심 | 20 | 굴욕 | 제거 |
(70p) ‘수치심’(20)의 수준은 위험할 정도로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태로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자살을 할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살아간다는 식의 자세이다.
(71p) ‘죄의식’(30)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 학대, 피해의식에서 생기는 여러 증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죄의식에 가득찬 사람들은 종교단체의 선동자들에 의해 강요당하고 조종당하기 쉽다. ‘죄와 구원’을 파는 파렴치한들은 응징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죄의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덮어씌우는 경향이 있다.
(72p) ‘무기력’(50)의 수준은 빈곤, 절망, 자포자기로 특징지어진다.
(77p) ‘자존심’(175)은 ‘수치심’, ‘죄의식’, 혹은 ‘두려움’에서부터 비약한 상태이다. 빈민가에서 사는 절망의 수준에서 해병대의 자존심으로 비약하는 것은 그야말로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존심의 약점은 오만과 부정(不定)이다. 이러한 특성상 자존심에 가득찬 사람들은 의식의 성장을 스스로 차단한다. 자존심에 가득 찬 사람들은 감정적인 문제임에도 그것을 부인하거나, 자신의 성품이 갖고있는 약점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79p) 200의 수준(‘용기’)에서는 내면의 참된 잠재력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류의 전체적인 의식 수준은 오랫동안 190에 머물렀으나, 20년 전부터 204의 수치로 괄목할 만한 비약을 보여주고 있음은 특이할 만한 사항이다.
(64p) 겉보기에는 가치가 없어 보이는 태도들도 검증해 보면, 딱히 좋다거나 나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분노’(150) 자체는 파괴적인 감정이고 낮은 수준의 의식 상태이지만 개인뿐만 아니라 소문화권도 질식시킬 수 있는 ‘무기력’(50) 상태보다는 더 활기찬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절망에 찬 사람들이 절망을 벗어나서 어떤 것을 원할 수만 있다면(‘욕망’, 125), 그런 후 다시 ‘분노’(150)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자존심’(175)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200의 수치로 측정되는 ‘용기’의 단계까지도 충분히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용기’의 수준은 개인이나 집단적인 상태의 개선을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분기점이 된다.
(83p) 400(‘이성’) 수준에 이르면 이보다 하위 수준의 ‘감정’ 단계를 벗어남으로써 ‘지성’과 ‘이성’이 삶의 전면에 떠오르게 된다. 노벨상 수상자, 위대한 지도자, 대법원의 판사들이 이 수준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93p) 400대 중에서도 높은 수준에서는 각 분야의 지도자들,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고위급 인사를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드는 499의 측정치를 보인다. 400대의 수치가 대학과 박사들의 수준이긴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어 융통성 없는 뉴턴의 우주관이나 몸과 마음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데카르트적 사고방식에 머무른다. 뉴턴과 데카르트도 499의 측정치를 보여준다.
(93p) 500(‘사랑’)의 수치는 깨달음의 세계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500대의 수준에서는 개인의 생존이 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모든 행동의 저변에는 사랑의 동기가 작용하기 시작하고, 창조성의 능력이 곳곳에서 보이며, 이는 헌신, 열심, 다채로운 경력 등으로 나타난다. 500대의 높은 단계에서는 우리는 사회 전반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영적인 지도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600의 수준으로 도약한다.
(94p) 600대의 특성은 ‘자비’로서, 그들의 행동 바닥에는 자비가 깔리게 된다.
(87p) 600 ~ 700의 수치로 측정되는 위대한 미술, 음악, 건축 작품 들은 잠시동안이나마 우리들의 의식을 더 높은 세계로 고양시켜 주며 시간을 뛰어 넘어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되어준다.
(89p) 이처럼 신성한 은총은 1,000에 이르는 것으로 측정되며, 역사에 기록된 인간으로서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서, 부처, 예수가 그 분들이다.
(90p) 전세계 인구의 에너지 수준에 대한 분포도를 그림으로 그리면 흡사 뾰족탑 모양을 연상시킨다. 전인구의 85%가 분기점인 200 이하에 속하며, 인류 전체의 평균 의식수준은 오늘날 204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붕 꼭대기의 비교적 소수의 강력한 힘이 바닥에 깔린 사람들의 약한 에너지를 상쇄함으로써 204의 평균치를 얻게 하고 있다. 이미 얘기한 바와 같이 오로지 0.4%의 인구가 500 혹은 그 이상의 에너지 장으로 측정되며, 1,000만 명 중 한 명(0.00001%)만이 600 이상의 수준에 도달한다.
(94p) 한 개인이 생애를 사는 동안 한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도약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다. 태어났을 때 측정된 에너지 장은 일생 동안 겨우 5점 정도의 증가를 보일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들의 의식 수준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무엇인가를 시사해 준다. 인류의 문화로써 표현되는 의식 세계 자체는 수많은 세대를 거쳐 아주 느린 걸음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282p) 인류의 의식 수준은 오랫동안 190에 머물다가 1980년 말기 냉전 종식 이후에 갑자기 204로 비약했다. 의식의 비약이 화해의 시대를 초래했는가, 화해의 분위기가 의식의 도약을 가져왔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강력한 ‘이미 결정된’ 끌개 장이 이러한 현상을 초래했는가?
(95p) 반대로 극소수의 사람들의 악영향은 전 문화를 흔들어 놓을 수 있고, 전반적인 의식 수준을 끌어내린다. 이는 역사가 잘 증명하고 있다. 운동역학의 시험 결과는 단지 전인구의 2.6%의 잘못된 사람들이 72%에 해당하는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253p)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파된 가르침의 수준은 가장 높은 차원인 1,000이었다. 그러나 2세기경,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실행 수준은 930으로 떨어졌고, 6세기 경에는 540으로 하락했다. 11세기 초 십자군 시대에 와서는 그 수준은 현재의 498로 되었다. AD 325년에 있었던 의식 수준의 급강하는, 본래의 가르침에 대한 니케아 공의회의 왜곡된 해석의 전파에 의한 것 같다.
(253p) 부처의 원래 가르침 역시 1,000에서 측정되었다. 6세기경, 가르침의 실행 수준은 900으로 하락했다. 불교의 가르침은 다른 종교에 비해 훨씬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다. 소승불교는 850, 대승불교는 950, 선불교는 600대에서 측정된다.
(261p) 지구상 인구의 15%가 분기점인 200 이상의 의식 수준에 속하지만, 15%의 집단적인 힘은 전인구 85%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상쇄시킨다. 잠재력의 수치가 로그 스케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의식 수준 1,000의 영적 스승은 전 인구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상쇄할 수 있다. 운동역학 시험 결과는 이를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 7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7,000만 명을 상쇄한다.
- 6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1,000만 명을 상쇄한다.
- 5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75만 명을 상쇄한다.
- 4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40만 명을 상쇄한다.
- 3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9만 명을 상쇄한다.
- 700의 12명은 한 분의 영적 스승(1,000)과 같다.
(현재 지구에는 700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12명 존재한다.)
(24p) 이 책을 쓰는 작업 자체의 진실성 정도는 750의 수치로 측정되었다.
-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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