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4일 월요일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 신현수(likeafirst1)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는 미국에서 태어나,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대륙횡단 철도가 부설되는 등 급변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소년시절부터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 절망적인 가난을 체험하였지만, 사회가 진보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 해결하는 일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헨리 조지는 빈곤의 근본적인 원인은 토지가 사유되었다는 데 있으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토지의 임대가치인 지대를 징수하고 그 만큼 다른 세금을 감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헨리 조지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독학으로 사상적, 학문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여 뛰어난 사회개혁가, 저술가, 언론인으로서 명성을 날렸다. 명저『진보와 빈곤』을 비롯하여 『보호냐 자유무역이냐』, 『정치경제학』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수많은 강연 원고, 논설도 남겼다. 그 중『진보와 빈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 국에서 꾸준히 발매되고 있다.

헨리 조지는 19세기 후반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많은 이상주의자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헨리 조지의 가르침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 알고 나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고 손문은 헨리 조지의 토지사상을 삼민주의의 하나인 민생주의의 중요 내용으로 삼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토지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진 신고전학파와 좌파 경제학이 학계의 주도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헨리 조지와 같은 중도적 입장은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구는 헨리 조지에 대한 정당한 학문적 평가 및 후속 연구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헨리죠지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다
벤자민프랭클린, 제퍼슨, 에머슨과 같은 사상가들보다 한 수 위에 놓을 수 있는 인물로 보 는 사람들도 많다

죤 듀이같은 저명한 교육철학자는 특히 헨리죠지를 세계가 낳은 10대 사상가 중에 한 사람으로 꼽으면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나란히 배열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윌슨 대통령도 헨리죠지를 매우 존경하였고 톨스토이나 손문은 그의신도였다고볼수있다

헨리죠지는 1839년에 태어나 1897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 교육으로 아들을 키웠다고하며 본래 조상이 영국인이므로 성공회 신자였으나 죠지는 깊은 종교체험을 통하여 감리교도가 되었다고 한다.

일찍이 결혼하여 젊은 나이에 타향으로 이주해 극심한 경제적 빈곤을 경험한 것이 사회정의에 대한 바른 안목을 키우는 데 결정적 계기를 주었다고 본다.

그는 신문기자에서 시작하여 발행인이 되기까지 성공의 가도를 달렸으며 이런 사회적 성장과 더불어 그의 사상가적 안목도 점차 원숙을 더하여갔다.

그는 일생에 걸쳐 빈곤추방에 절대적으로 헌신하였는데 그가 목격한 빈곤이란 자연상태로서의 빈곤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어긴 인류사회의 범죄 때문에 생겨나는 빈곤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자연의 일반법칙에서나 성경의 가르침에서나 모두 경제운용의 기본은 하나님께서 주신 토지를 어떻게 유용하게 쓰느냐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확고한 진리를 이해한 이후 그의 생애는 '샌프란시스코의 선지자'라고 불리기에 합당한 열정적이고 선구적인 삶으로 변화되었다.

그의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은 1879년에 출판되었다.

'진보와 빈곤'의 출판과 함께 그의 사상은 뜻있는 이들의 많은 호응을 얻어 그는 토지가치세만 남기고 다른 조세를 폐기하는 것을 주장하는 '단일세론자'들을 조직해내는데 성공하였고 전세계적으로는 지지자들의 연맹들이 속속 탄생하였다.

헨리죠지는 1886년에 노동단체의 후보로서 뉴욕시장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측의 부정선거로 낙선되었고 1897년에는 노동단체에서 강권하여 다시 뉴욕시장 경선에 나섰으나 과로로 최후를 맞았다

그는 실로 그가 지향한 하나의 목적을 향해 전력투구하다가 타계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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