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일 금요일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 - J. N. Forkel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대략 1720년부터, 그러니까 35세부터 타계할 때까지 쓴 모든 작품의 화성은 이러한 여러 선율의 짜임, 즉 모두 노래다워서 언제라도 상성부로서 나타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는 여러 선율의 짜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 점에서 세상의 모든 작곡가를 능가하고 있다. 나는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작곡가의 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찾아낸 적이 없다. 바흐의 4성부 곡에서 때로 상성부와 하성부를 제거한다해도 남은 두 내성부만으로도 여전히 명료하고 노래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성부 모두가 자유롭고 흐르는 노래 같으려면 개개 성부간의 상호관계가 지극히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한다. 그러한 화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바흐는 당시의 음악 학습서에서 배울 수 없는, 그의 위대한 천재성이 가르쳐준 아주 특별한 방법을 이용하였다. 이 특별한 방법은 그가 성부 진행에 부여해준 바로 그 커다란 자유에 기초하고 있었다. ...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자녀교육 (Children Are From Heaven) - 존 그레이

"'아니오'라고 말하도록 허락해주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감정을 이야기하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알아낸 다음 협상한다. 그것이 아이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아이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 알게 되면 보다 더 부모에게 협력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잃지 않고 맘껏 발휘한다. ...

긍정적인 양육법을 실천하면 굴종하는 아이가 아닌 협력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 부모의 의지를 무작정 따르도록 하는 것은 아이에게 유익하지 않다. 저항감이 생길때 마음속으로 깨닫고,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것이 아이의 자의식을 발전시키는데 도움될 뿐 아니라 아이가 좀더 잘 협력하도록 하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히틀러의 성공시대 - 김태권

"히틀러가 훗날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째 좀 짜증이 난다. 히틀러는 왜 그랬을까? 그가 '기회주의자'라서?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어쩌면 그는 '생계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사관이 될 생각도 없고 사회로 돌아갈 자신도 없이 제대만 미루던 히틀러. 그런 그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오는데... 나이 서른에야 난생 처음으로,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다. '나도 연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투쟁>"

꿈의 돛을 펼쳐라 - 윤태근

낮 동안 적당한 북동풍이 배를 잘 나가게 해주었다. 저녁 무렵 마젤란 해협 입구에서 동쪽으로 약 35마일쯤 떨어진 해상을 통과하여 내려갔다. 남위 52도 32분이다. 이곳만 하더라도 남아프리카의 희망봉보다 1,050마일이나 더 남쪽이다. 그야말로 땅 끝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니 북쪽으로 향하는 해류의 영향을 받는게 느껴진다. 속력이 3노트로 떨어졌다. 마젤란 해협 아래는 섬이다. 해협 위쪽 지역은 파타고니아라고 부르고 아래는 티에라델푸에고라고 부른다. 마젤란은 티에라델푸에고 섬 위쪽을 지나갔고 다윈이 승선한 비글 호는 섬 아래쪽으로 지나갔다. 마젤란 해협이 거리상으로는 태평양으로 나가기에 훨씬 가깝지만 해협이 거칠고 남쪽 비글해협은 거리는 멀지만 기상조건이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한다. 특히 비글해협은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에 태평양으로 향하는 대부분의 요트들이 이 길로 향한다...

Schubert: Impromptu, no 3, G-Flat Major



Schubert: Impromptu, no 3, G-Flat Major

Schubert: Nacht Und Traume, D 827


Schubert: Nacht Und Traume, D 827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 발견의 역사를 되짚다 보면 남동알래스카의 숲에 맨 처음 살았던 사람들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작은 사건과 마주친다. 아득한 옛날이야기의 세계로 나를 이끄는 사건이다.

1732년, 러시아 정부는 베링과 치리코프에게 아메리카 원정을 명령한다. 베링의 제1차 탐험으로 캄차카 저편에 신대륙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1741년에 베링은 세인트피터 호를, 치리코프는 세인트폴 호를 이끌고 출발한다. 그러나 짙은 아개 탓에 둘은 알류샨 열도 앞바다에서 엇갈려 헤어지고 만다. 이후 베링과 치리코프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

베링은 얼음에 뒤덮인 산봉우리인 세인트일라이어스 산을 바다 위에서 관측하지만 식량이 부족해서 돌아가기로 한다. 현재 베링 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섬까지 가서 월동을 결심하나 병에 걸려 섬에서 생애를 마친다. 탐험대원 77명 중 31명이 사망했으며, 남은 대원들은 여울에 밀려온 배를 분해하여 작은 보트를 만들어타고 다음해 오호츠크로 돌아갔다.

한편 베링과 헤어진 치리코프는 7월 15일 남동아래스카에서 현재 베이커 섬이라고 불리는 섬을 발견한다.

치리코프의 일지에서
'7월 15일 오전 2시. 우리는 드높은 산맥을 발견했다. 또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메리카임이 틀림없다...
7월 18일 오후 3시. 우리는 육지에 가능한 한 가까이 접근했다. 대원 두 명을 보트에 태워 육지로 보냈다...'

그러나 보트는 돌아오지 않았다. 7월 23일, 치리코프는 먼 바닷가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을 확인한다. 7월 24일, 대원 네 명을 보트에 태워 다시 육지로 보냈다. 그 보트도 돌아오지 않았다.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한 여름날이었다. 7월 25일, 보트 두 척이 치리코프의 배에 갑자기 다가온다.

다시, 치리코프의 일지에서
'... 처음에는 우리 대원들이 탄 보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 지면서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두 척 중 한 척은 뱃머리가 뾰족했다. 노 젓는 법도 달랐다. 보트에 탄 사람이 네 명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중간에 멈춰서 더는 다가오지 않았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은 빨간 옷을 걸친 것 같았다. 그들은 갑자기 일어서서 "아가이! 아가이!"라고 두 번 소리쳤다. 그러고 나서 온 길을 돌아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에겐 이제 육지로 보낼 보트가 없었다...'

처음 보트를 보낸 지 이미 8일이 지난 상태였다. 치리코프는 돛을 올리라고 지시하고 돌아오지 않는 대원 15명을 남긴 채 귀로에 올랐다. 안개 속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외친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사라진 대원 15명에 관해서는 클링깃족의 옛날이야기에서 조차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알래스카 발견의 역사 속에 감춰진 이 작은 에피소드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그 신비한 배를 탄 사람들은 큰까마귀의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었을까? 남동알래스카의 바다를 떠도는 동안 나는 이 이야기를 줄곧 잊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는 늘 한달음에 치리코프의 시대에 뛰어들 수 있었다. 남동알래스카의 바다를 둘러싼 깊은 숲의 세계는 빙하가 조금 물러난 것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호시노 미치오의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