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발견의 역사를 되짚다 보면 남동알래스카의 숲에 맨 처음 살았던 사람들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작은 사건과 마주친다. 아득한 옛날이야기의 세계로 나를 이끄는 사건이다.
1732년, 러시아 정부는 베링과 치리코프에게 아메리카 원정을 명령한다. 베링의 제1차 탐험으로 캄차카 저편에 신대륙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1741년에 베링은 세인트피터 호를, 치리코프는 세인트폴 호를 이끌고 출발한다. 그러나 짙은 아개 탓에 둘은 알류샨 열도 앞바다에서 엇갈려 헤어지고 만다. 이후 베링과 치리코프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
베링은 얼음에 뒤덮인 산봉우리인 세인트일라이어스 산을 바다 위에서 관측하지만 식량이 부족해서 돌아가기로 한다. 현재 베링 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섬까지 가서 월동을 결심하나 병에 걸려 섬에서 생애를 마친다. 탐험대원 77명 중 31명이 사망했으며, 남은 대원들은 여울에 밀려온 배를 분해하여 작은 보트를 만들어타고 다음해 오호츠크로 돌아갔다.
한편 베링과 헤어진 치리코프는 7월 15일 남동아래스카에서 현재 베이커 섬이라고 불리는 섬을 발견한다.
치리코프의 일지에서
'7월 15일 오전 2시. 우리는 드높은 산맥을 발견했다. 또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메리카임이 틀림없다...
7월 18일 오후 3시. 우리는 육지에 가능한 한 가까이 접근했다. 대원 두 명을 보트에 태워 육지로 보냈다...'
그러나 보트는 돌아오지 않았다. 7월 23일, 치리코프는 먼 바닷가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을 확인한다. 7월 24일, 대원 네 명을 보트에 태워 다시 육지로 보냈다. 그 보트도 돌아오지 않았다.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한 여름날이었다. 7월 25일, 보트 두 척이 치리코프의 배에 갑자기 다가온다.
다시, 치리코프의 일지에서
'... 처음에는 우리 대원들이 탄 보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 지면서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두 척 중 한 척은 뱃머리가 뾰족했다. 노 젓는 법도 달랐다. 보트에 탄 사람이 네 명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중간에 멈춰서 더는 다가오지 않았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은 빨간 옷을 걸친 것 같았다. 그들은 갑자기 일어서서 "아가이! 아가이!"라고 두 번 소리쳤다. 그러고 나서 온 길을 돌아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에겐 이제 육지로 보낼 보트가 없었다...'
처음 보트를 보낸 지 이미 8일이 지난 상태였다. 치리코프는 돛을 올리라고 지시하고 돌아오지 않는 대원 15명을 남긴 채 귀로에 올랐다. 안개 속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외친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사라진 대원 15명에 관해서는 클링깃족의 옛날이야기에서 조차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알래스카 발견의 역사 속에 감춰진 이 작은 에피소드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그 신비한 배를 탄 사람들은 큰까마귀의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었을까? 남동알래스카의 바다를 떠도는 동안 나는 이 이야기를 줄곧 잊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는 늘 한달음에 치리코프의 시대에 뛰어들 수 있었다. 남동알래스카의 바다를 둘러싼 깊은 숲의 세계는 빙하가 조금 물러난 것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호시노 미치오의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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